O - 영어 스피킹 훈련의 동기를 찾기 어려울 때

Created: 2022-03-30

동기는 어떤 행동을 시작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행동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1] 예를 들어 마음에 와닿은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기타를 잡기도 하지만, 기타를 계속 잡게 될수록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동기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독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로 일하기 위해서는 원서나 해외 논문의 내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큰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공부 만 4년을 4달 정도 앞둔 지금 소기의 목적은 달성을 했습니다.

독해와 리스닝이 전부였던 영어공부 습관이 1000일 넘게 지속되니 자연스레 말을 잘하고 싶다는 동기가 생겼고,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날마다 하루 5분이라도 스피킹을 지속 중입니다.

그런데 왜 스피킹을 잘하고 싶은지 자문해 보면 그 답이 독해와 리스닝처럼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냥 멋져 보이니까.' 정도의 답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직업적으로 어디 가서 영어를 쓸 일도 없고(도구적 동기), 영어가 모국어인 누군가를 친한 지인으로 둔 것도 아닌데(통합적 동기) 저는 왜 스피킹에 다섯 달째 목을 매는 것일까요.^[2] 다크호스를 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정한 동기와 일치하는 활동을 하면 당신의 인생행로는 흥미진진하고 만족스러워진다.^[3]

다섯 달을 해도 I.. I.. 고장난 레코드처럼 말을 더듬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저를 놀리는 와이프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영어공부 만 4년 됐다고 말하기 창피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피킹이 나도 아직 모르는 내 '진정한 동기'와 일치하는 활동일까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네요. 이런 의구심과 불만족감이 계속 든다면 올해 목표인 'B1 수준의 스피킹 실력'^[4]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창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그렇게 된다고 유명한 유튜브 원어민 강사가 말하더군요.

If you don't believe in yourself or your ability to become fluent in English you will not become fluent. (중략) We need to envison you speaking English fluently now.^[5]

일단 칼을 뽑았으니 무 아니면 단무지라도 썰어야겠다는 심정입니다. 이를 위해, 스피킹에서 뚜렷한 동기를 못 찾았다 하더라도 '멋져 보이고 싶다'는 동기 하나가 있으니 이것이라도 잘 부여잡고 가는 수밖에요. 메모의 마법을 쓴 저자의 말이 이런 점에서 위로가 됩니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싶다', '좋은 차를 타고 싶다'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언뜻 불순한 동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욕망을 지녔다는 점이 인간답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욕망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 게다가 욕구는 계층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욕구를 뛰어넘으면 다른 고차원적인 욕구로 넘어간다.^[6]

인간적 욕망에 충실한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보다 고차적인 욕구, 아마 타인의 안녕에도 관심을 쏟게 하는 어떤 욕구, 즉 동기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도 모르는 어떤 지점으로 나를 인도하지 않을까 막연한 상상을 해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오버하지 말고 단무지라도 멋지게 써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스피킹에서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쌓아 나감으로써 언젠가 멋지게 단무지를 썰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공개하려 합니다.